도피로 시작된 여정
안녕하세요. 저는 강화도에서 '루아흐'라는 파스타집을 운영하고 있는 전성현입니다. 강화도에서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다녔고, 20살에 떠났다가 20대 중반이 지나 다시 돌아오게 됐어요.
요리를 하기 이전에는 배우의 꿈을 가지고 서울에서 극단 생활을 했어요. 강화도로 다시 온 건, 솔직히 말하면 일종의 '도피'였죠. 서울에서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어요. 되고 싶었던 것들, 하고 싶었던 것들을 이루지 못했고, 결국 더는 버틸 힘이 없어졌어요. 그래서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처음에는 대단한 계획 없이 그저 하루에 10만 원 정도만 벌면 혼자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왔죠. 서울보다 월세가 싸니 창업도 가능할 것 같았고요. 고향에 와서 대단한 음식점을 만들겠다는 야심 찬 계획은 없었어요. 그저 서울에서 모든 힘을 다 쓴 것 같아 내려온 거예요.
환대로 시작하는 아침
서울에서는 연기든 요리든 뭘 하든 고려해야 할 게 너무 많았어요. 이것저것 다 맞춰야 성공할 수 있고 먹고 살 수 있었죠. 하지만 여기서는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면 돼요. 내가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만 하면 크게 벗어나지 않아요. 경쟁하지 않고, 많은 것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게 이곳의 장점이에요. 처음에는 안정적이지 않았지만, 살면서 점점 안정을 찾아갔어요. 고향에 와서 도시와 가장 다르다고 느꼈던 건 이곳에서 받는 환대예요. 그날 재료를 그날 아침에 사는 게 저의 요리 철칙인데, 풍물시장에 아침마다 가면 모든 분들이 반갑게 맞아주세요. 셰프님이라고 환대도 해주시구요. 제가 마치 뭐라도 된 것처럼따뜻한 응원의 시선들을 많이 받아요. 그렇게 매일 아침을 여니까 항상 기분 좋은 마음으로 시작해요.
위에 말했듯이 저의 요리 철칙은 오늘 사용할 재료는 오늘 아침에 사요. 하루 끝에 남은 재료들은 다 버리죠. 그리고 미리 프랩을 해두지 않아요. 손님이 많아도 그 주문 들어온 즉시 파슬리를 다지고 면을 뽑아요. 왜냐면 향 자체가 다르거든요. 꽃게만 해도 그래요. 살을 미리 발라놓는 것과 요리를 하며 바르는 건 다르거든요. 극적인 차이는 아닐 수 있지만 저는 다르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주문한 요리가 빠르게 나오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손님분들이 여기서만큼은 급하지 않으신 거 같아요. 천천히 음미하며 대화를 나누며 이 시간을 온전히 즐기실 수 있죠.
오늘의 메뉴는 뭔가요?
'오늘의 파스타'를 만들 때, 대단한 영감을 받아 만드는 게 아니에요. 매일의 반복된 경험, 시장에서 본 재료들, 사계절의 변화를 통해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요. 재료에 대한 기억들을 조합해 오늘의 파스타를 만드는 거죠. 때로는 손님들이 이전에 먹었던 파스타 사진을 보내며 다시 만들어달라고 요청하기도 해요. 매번 달라지는 '오늘의 메뉴' 를 드시기 위해서 정말 자주 오시는 손님들도 여럿 계시죠.
저는 음식을 대접하는 것뿐만 아니라 손님들에게 좋은 경험을 선사하고 싶어요. 무대와 부엌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제가 무대위에서 배웠던게 하나도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이 들거든요. 무대 위 배우처럼 걸음걸이에도 신경 쓰고, 세심하게 요리를 준비해요. 하나의 극이 완성되듯이 저의 요리라는 극을 완성시키는거죠. 단순히 맛있는 파스타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손님들이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가시길 바라요.
제가 느낀 환대가 가득한 강화도에서 재철요리 파스타 한그릇과 함께 식도락여행 하는거 어떠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