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대로 만들어가는 세계로
저는 강화도의 고등학교형 대안학교를 다녔어요. 중학교 때는 경쟁에 치여 "이 사회에서 성공할 거야"라는 포부를 가진 학생이었는데, 그게 제게 자연스러운 방식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마침 강화도가 제가 사는 곳과 가까워 대안학교에 가게 됐죠. 거기서 처음으로 도시의 방식이 아닌, 지역에서 서로 협력하고 챙겨주며 개인의 정체성을 존중받으면서 일해 나가는 청년들의 모습을 많이 봤어요.
세계 여행을 하다 춤이 좋아져 스윙댄스 아티스트로 전향한다거나, 외국에 오래 있다 찻집을 여는 등 다양한 일을 하는 청년 사장님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었죠. 그러면서 '나도 사회의 문법이 아닌 내 방식대로 살아갈 수 있는 시도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하지만 바로 졸업하고 살기에는 너무 열악했어요. 집도 비싸고 돈도 없었죠. (웃음) 서울에서 스타트업을 잠시 다니다가 2021년에 강화유니버스 프로젝트로 다시 돌아오게 됐어요.
가치관 즉 감수성이 맞았어요.
스타트업에서 일할 때 고민했던 게 있거든요.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돈만으로는 삶이 만족스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내 삶이 만족스러우려면 내가 추구하는 가치관이나 삶에서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을 바탕으로 일을 하고, 그걸로 돈을 버는 게 삶의 만족도를 높일 거라 생각했죠. 그걸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강화유니버스예요.
강화유니버스 멤버들은 모두 이주해 온 청년들이에요. 원래부터 이곳에 살던 '토박이'들은 연고도 있고, 지역에서 도움받을 수 있는 인맥도 있고, 땅이나 건물을 가진 경우도 있어서 더 쉽게 정착할 수 있죠. 하지만 이주해 오는 청년들은 아무런 기반이 없다는 걸 인정하고 시작해야 해요. 지역에서 새로 시작할 때, 우리 청풍이 중요하게 생각한 건 안전망과 감수성이었어요. 단순히 일자리가 있거나 돈을 많이 준다고 해서 청년들이 마음을 붙이고 살 수 있을까요? 저는 전혀 아니라고 봐요. 중요한 건 감수성이에요. 그래서 성인지 감수성도 엄청 중요하게 생각하죠. 왜냐하면 지역에서 즐거운 일만 있는 게 아니거든요.
사는것뿐만이 아닌 문화를 만들기
아, 우리 팀에 대해 설명드리면 좋겠네요. 팀 이름은 협동조합 청풍이고, 2013년부터 강화도에 정착해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풍물시장의 아주 작은 공간에서 강화도 특산물로 만든 밴댕이나 고구마 피자 같은 걸 팔면서 시작했어요. 여기 오게 된 이유는 이 지역에서 청년이나 청소년 세대가 살아갈 수 있는 문화적, 경제적 기반이 너무 열악해서였어요. 그래서 우리만의 방식으로 이 지역 안에서 어떻게 그런 기반을 만들어볼 수 있을까 하면서 모이게 됐죠. 피자 파는 것 외에도 다양한 실험을 했어요.
시장 상인분들과 함께 아프리카 댄스로 퍼레이드를 하고, 소창이나 왕골 같은 지역 특산품으로 아카이빙 프로젝트를 하고, 외부 청년 아티스트들과 굿즈를 만들기도 했죠. 이런 활동의 바탕에는 세대 간 분절이 아닌, 지역에서 청소년, 청년, 기성세대가 어떻게 다양하게 협력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있었어요.
10년이 조금 넘은 지금, 100여 곳의 지역 주민들이나 상점들과 협력해 다양한 지역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어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외부 여행자들을 맞이하는 '잠시 섬' 같은 여행 프로그램도 운영하면서, '과연 지역에 사는 사람만이 이 지역의 문화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됐어요.그러다 외부 여행자들과 소통하면서, 이곳에 애정을 갖고 자주 방문하거나 새로운 문화와 활동을 만들어가는 친구들이 이사 오는 걸 보게 됐어요. 그래서 이 사람들이 다 함께 모여 지역의 다양성과 개방성을 높이고, 각자 하고 싶은 프로젝트나 문화를 만들어가는 커뮤니티를 만들어보자 한 게 바로 강화유니버스였죠.
2021년에 출범해서 지금까지 강화유니버스라는 이름으로 외부 여행자, 청소년, 외국인, 그리고 지역 상점들과 협력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여행업이 아닌 환대업
'잠시 섬'은 2016년부터 시작한 '좀 살아보는 프로그램'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저희가 '잠시 섬'을 시작하게 된 배경은 지역에서 여러 경제적 기반을 만들면서 시장, 팝업 스토어, 피자집, 심지어 '한판 식당' 같은 것도 운영했었어요. 그런데 강화도가 수도권에서 유명한 관광지라고 하는데도 저희 가게나 친구들 가게에는 손님이 거의 오지 않았죠.이유를 알아보니, 사람들이 지역 관광지를 여행하는 특정 루트가 있다는 걸 발견했어요.
예를 들어, 김포 쪽 도시에서 오는 관광객들은 대형마트에서 고기를 잔뜩 사고 펜션을 예약한 다음, 유명 랜드마크만 찍고 그대로 돌아가는 구조더라고요. 차는 엄청 많은데 사실 대부분의 상권을 책임지고 있는 골목의 작은 상점들이나 책방들, 아티스트들이 운영하는 공간들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전혀 모르고 있어요. 관광지만 찍고 가는 여행 말고도 다른 방식의 여행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저희는 이를 "여행업"이 아닌 "환대업"으로 정의하고 있어요. "잠시 섬"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바로 환대인데, 오시는 분들의 거의 60%가 지인 추천이나 재방문이에요. 많이 오시는 분들은 1년에 10번도 오시더라고요. "왜 그렇게 자주 오세요?"라고 물어보면 "다른 지역과 달리 여기는 나를 환대해 주는 기분이에요"라고 하시더라고요.
개인의 특성에 맞춰 존중하고 환대하는 문화를 느끼니까, 사실 다른 여행지에서는 이런 환대를 받는 기분을 느끼기 힘든 거예요. 이런 문화가 이제 운영진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과 여행자 사이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나 루트를 통해서만 환대의 문화를 만드는 게 아니라, 여기 오시는 분들도 함께 이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이 프로그램이 탄생했어요. 여러분이 사는 세상, 혹시 조금 딱딱하진 않은가요? 우리 좀 더 연결되어 말랑말랑하게 살아가봐요!